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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주니어 기획자로 살기 #침묵의 달콤함

업무 특성상 프로젝트별로 개발자가 다르게 배정되고 한 달에서 두 달 정도의 기간 동안 진행한다. 

우리 회사는 JIRA로 업무를 할당한다. 기획자가 JIRA 하위에 Sub-JIRA를 만들고 할당 담당자에게 Assign 하는 형태이다.

할당 담당자는 주로 파트장 or 팀장이며 실무자에게 Assign 한다. '기획> 개발> 검수> 테스트' 순으로 일이 진행되고, 공식적인 테스트는 아니고 개발 결과물에 대해서 기획자가 일주일 정도 확인하는 과정을 팀에서는 검수라고 부른다.

 

A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생성한 Sub-JIRA는 개발자 A에게 할당됐고, 개발자 A는 개발 기간 동안 나에게 아무런 메시지도 보내지 않는다. 그렇게 개발 기간이 끝났다.

 

B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생성한 Sub-JIRA는 개발자 B에게 할당됐다. 개발자 B는 개발 기간 동안 아니 기획이 종료되기 전부터 나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쑥쑥이님 카테고리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쑥쑥이님 메시지 치환할까요?" 등등..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수많은 질문에 답했고 개발 기간이 끝났다.

 

검수 결과, 당연히 B프로젝트 완성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A프로젝트는 검수 기간에 개발된다는 느낌까지 받게 만들었다. 차이는 개발자 A는 침묵을 개발자 B는 질문을 선택했다는 것 뿐이다. 개발자 A는 왜 침묵을 선택했을까?

 

재택근무 비대면 업무가 장기화되면서 우리는 더 많은 침묵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은 침묵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질문의 반대말은 침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 침묵할까? 왜 침묵하게 만들었을까?

침묵(沈默)
- 아무 말도 없이 잠잠히 있음. 또는 그런 상태.
- 정적(靜寂)이 흐름. 또는 그런 상태.

- 어떤 일에 대하여 그 내용을 밝히지 아니하거나 비밀을 지킴. 또는 그런 상태.

1. 모르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아마 주니어에게 가장 두려운건 질문보다는 질문으로 돌아오는 추가 질문이 아닐까?

돌아오는 추가 질문을 잘못 대답하면 찾아봐야 될 자료가 배로 늘어나는 놀라운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파트장님이 자료 찾기 미션을 줍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거절은 불가능합니다. [수락] 

그래서 침묵한다. 조용히 넘어가면 내가 모르는걸 아무도 모르고 파트장님이 주는 미션도 안 생긴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한다면 수평관계에 있는 팀원에게 도움을 청한다. (같이 모르면 결국 둘 중 하나는 미션을 받겠지만)

 

2. 일이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감 VS 침묵 깨기 (질문 스트레스)

나만 알고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경우가 생겼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일이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에 늦게라도 상황을 말한다. 요즘 더 빨리 위기 상황을 전달하지 못하고 혼자 해결해보려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어서 씁쓸하다.

이슈의 크기는 다르다. 도움말에 있는 오탈자와 기능이 동작하지 않는 것 중 누가 봐도 후자가 더 큰 문제가 된다. 스스로 일의 크기가 작다고 판단되고 이때 느끼는 불안감이 작을수록 우리는 침묵을 선택한다.

주니어 : 파트장님 도움말에 오탈자가 있어서요. ~습니다를 ~합니다로 고쳐도 될까요?
파트장 : OO일 때 어떤 식으로 했나요?
주니어 : 아.... (뒤적뒤적)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파트장 : 그럼 AA일 때는?
주니어 : ....그건..... 찾아보겠습니다.(다음부터 도움말은 혼자 조용히 써야지)

3. 침묵하게 만드는 사람

질문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부터 작성하고 있는 지금까지 이미 스트레스다.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다가 메시지를 안 보낼 방법을 고민하기도 한다.

😑 안녕하세요 쑥쑥이입니다. OO건으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궁금이라고 하면 너무 가볍나)
😎 OO건 문의드립니다. A일 때 B가 되는 거 맞나요? (너무 본론부터 말했나)
😂 시간 괜찮으신가요? OO건 문의드려도 될까요? (안 괜찮으면 안 물어볼 건가)

침묵하게 만드는 사람은 꼭 이렇게 말한다. "쑥쑥이님 궁금하면 물어보라고 했잖아요? 편하게 물어보세요 왜 안 물어봤어요" 그럼에도 침묵하거나 같은 내용을 알 것 같은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이유는 이미 학습된 부정적인 반응 때문이다. 만약 꽤 많은 사람이 본인에게 침묵한다면 그건 잘해서가 아니라 불편한 사람이여라고 말하고 싶다. 

 

4. 침묵을 권장하는 조직 분위기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조직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의견을 제시하는 것과 실제 그 의견이 수용될 여지가 있는지는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사장님 :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해주세요
다음날이🌅 밝았습니다.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X 1000번 반복 후
사장님 : 왜 다들 아무 의견이 없나요?

그런 조직 문화에 학습되다 보면 "어차피 말해도 바뀌는 것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을 아끼게 된다. 의견이 별로일 수 있겠지만 정서적으로 이 대화가 형식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게 되면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침묵하지 말자 침묵하게 만들지 말자

물론 질문도 침묵도 분위기에 따라 필요하지만 적어도 일을 할 때는 겁내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겁나고 과거에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해 입을 떼기가 두렵다면 작은 것부터 연습해보자.

일을 하면서 점점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질문으로 겪은 안 좋은 경험이 많은 편이라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해서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더 곤욕스럽다. 나에겐 많은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해봐야지 할 수 있으면 해야지